문화

지역호감도

의령의 명당, 3대 인물의 생가

의령에는 예로부터 뛰어난 인물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의령을 대표하는 3대 인물이 있는데, 바로 의병장 망우당 곽재우 장군, 항일 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 경제가 호암 이병철 선생이다. 의령에는 이들이 살았던 생가가 보존되고 있다. 그곳들에는 성공한 인생을 살고, 그 이름 세 글자를 남긴 이들의 기운을 받기 위한 사람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국가경제발전을 이끈 인물, 호암 이병철 선생

  • 의령군 삼성 이병철 회장의 생가는 명당 중의 명당으로 평가받고 있다. 

호암 이병철 선생은 한국의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삼성그룹의 창업주다. 삼성그룹을 비롯해 신세계, CJ그룹, 중앙일보 등이 다 그에게서 나왔으니 그와 관련이 있는 재계, 언론계만 따져도 어마어마하다. 창업 1대 만에 확고한 재벌체계를 세운 호암의 사업철학은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라는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고. 확고한 신념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사명감을 가진 그의 철학은 한국 경제의 발전을 선도해 나갔으며, 지금에까지 그 영향력이 전해지고 있다.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언론 등 사회 각 분야의 발전까지 도모했던 그가 태어난 곳이 바로 경상남도 의령이다.

남서향으로 사계절 내내 따스한 햇살이 드는 그의 생가도 바로 의령에 있다. 대문채를 지나 들어가면 일자형으로 이뤄진 안채와 사랑채, 광으로 이루어진 구조가 보인다. 호암의 할아버지가 직접 지었다는 이곳은 들어가는 곳은 좁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지는 형태를 이루고 있다. 더욱이 배산임수에 전저후고라는 풍수 명당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니 풍수지리가 중요하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더욱이 노적봉의 형상으로 곡식을 쌓아놓은 것만 같고, 산의 기가 한 곳으로 모여드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을 둘러싸고 있는 오른쪽 바위벽은 자세히 보면 재물과 부귀를 뜻하는 동물이 보인다고도 하니 한번 잘 찾아보자.


 

민족의 선각자, 백산 안희제 선생

  • 기와집과 초가집이 함께 어우러진 백산 생가. 뒷산에는 그가 학문을 닦았던 고산재가 있다.

이보다 이른 시기에 민족기업을 세운 실업가가 있었으니 바로 백산 안희제 선생이다. 1914년 부산에 세워진 백산상회는 1927년 폐업되기 전까지 국내외 독립운동단체에 연락처를 제공하고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그보다 5년 전, 양정의숙을 다니던 1909년에는 해방 때까지 그 실체가 발각되지 않은 독립운동 비밀결사인 대동청년당을 결성했으니 학창시절부터 독립운동에 열성을 바친 것. 백산상회가 폐업된 후에는 중외일보의 사장이자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1931년까지 항일 언론투쟁에 나섰다. 대종교에 입교해 만주 동경성 일대에 항일독립운동 근거지를 세우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을 펼친 것도 1931년 10월의 일이었다.
 
한평생을 독립에 바쳤던 백산의 생가에 가면 호암 이병철 생가와 비슷한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바로 사랑채와 안채가 二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 본디 경남지방 사대부의 가옥 배치는 이렇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다만 이곳의 안채는 기와를 올리되 사랑채는 초가를 올려 독특한 느낌이 든다. 너른 마당을 지니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사랑채와 안채의 간격이 짧다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조선 후기의 민가천축양식을 고스란히 가진 이곳에서 햇살을 맞고 있노라면 스물한 살의 백산이 ‘세상에 맞는 학문을 하여 국민이 직분을 다하는 것이 공맹의 도’라 외쳤다던 일화 한 자락이 떠오른다.


 

애국심을 가진 용맹한 의병장, 곽재우 홍의장군

  • 곽재우 장군의 생가는 현재 관광 자원화 사업을 통해 체험공간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다.

큰 북을 매달아 놓고, 그것을 울려 의병들을 훈련했던 곽재우 장군. 그는 붉은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임진왜란 당시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의병장이다. 나라에 대한 충심으로 돌아오지 못할 전장에 나섰던 그의 용맹함과 의지는 여전히 경남 의령에 남아있다. 망우당 곽재우 생가는 앞의 두 곳과는 달리 한옥이 ㄱ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 독특하다. 안채와 사랑채 등 7동의 건물과 부대시설이 2005년 복원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2014년 말에는 관광 자원화 사업을 거쳐 한층 더 관광지다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 특징. 그러나 곽재우의 탄생을 지켜보았을 아름드리 느티나무의 자태는 여전히 이곳의 중심을 묵직하게 잡아준다.
 
곽재우 생가와 함께 돌아볼 만한 곳이 있다면 세간리 현고수다. 500m가량 골목길을 걷다 보면 홍의장군이 큰 북을 매달아 놓았다던 느티나무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구부정하게 휘어 금줄을 허리에 감고 있는 현고수는 41세의 나이에 자신의 재산을 털어가며 의병을 모았던 그의 의기를 상징하는 또 다른 명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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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 이병철 선생, 곽재우 홍의장군, 백산 안희제 선생의 생가가 있는 의령군! 의령을 대표하는 3대 인물의 기운을 받으러 떠나보세요~

트래블투데이 박선영 취재기자

발행2019년 07월 29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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